인간극장 ‘그래서 사랑해요’ 리뷰|구두 솔이 마비스 씨의 빗이 되기까지

마비스 씨는 구두 솔로 머리를 정돈합니다. 자신의 곱슬머리를 손질해 줄 곳을 찾기 어려워 직접 알아낸 방법입니다. 얼핏 보면 낯선 나라에 잘 적응한 사람의 유쾌한 생활 지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금 짠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은 미용실에 가거나 빗을 사면 끝날 일을, 마비스 씨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부터 찾아내야 했습니다. 구두 솔이 빗이 되기까지 그는 몇 번이나 불편을 겪었을까요.

2018년 11월 26일부터 30일까지 방송된 인간극장 〈그래서 사랑해요〉에는 나이지리아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마비스 씨와 한국인 아내 유영 씨가 등장합니다. 나이지리아에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광주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한국에서 두 번째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방송에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가족이 되는 과정이 유쾌하게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자꾸 보게 된 것은 국제결혼의 특별함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마비스 씨에게 반복해서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구두 솔이 빗이 되기까지

마비스 씨는 한국 음식을 즐기고 청양고추와 마늘도 곧잘 먹습니다. 한국어로 농담을 주고받고, 성격 급한 아내 옆에서는 느긋하게 속도를 맞춰줍니다. 낯선 환경에서도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두 솔로 머리를 빗는 장면도 처음에는 그의 재치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낯선 곳에 적응한다는 말에는 자주 생략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준비된 생활환경이 자신에게는 맞지 않을 때, 불편한 사람이 스스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비스 씨의 외모는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끌었고, 나이지리아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의 능력보다 앞서 평가되곤 했습니다. 영어 강사로 일하면서도 자신이 영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인지 설명해야 했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왔다는 사실과 자신의 학력, 실력을 차근차근 말한 뒤에야 수업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모르는 것을 묻는 일과 출신 국가만 보고 실력을 의심하는 일은 다릅니다. 그러나 그 차이를 설명하는 역할까지 늘 마비스 씨의 몫이었습니다.


모욕을 당한 사람이 먼저 이해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

길에서 피부색을 향한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더 화를 낸 사람은 아내 유영 씨였습니다. 정작 마비스 씨는 상대가 자신을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며 아내를 말립니다.

그의 태도를 두고 현명하고 긍정적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물론 쉽게 분노하지 않고 상황을 넘기는 것은 마비스 씨가 선택한 방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욕을 받은 사람이 상대의 무지까지 이해해 주어야 일상이 조용히 흘러가는 상황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구하는 문제를 이야기하던 날, 늘 괜찮아 보이던 마비스 씨가 집을 나섭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취업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삶도 생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진 뒤였습니다.

혼자일 때는 웃어넘길 수 있었던 문제도 결혼한 뒤에는 무게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이제 취업은 자신의 생계만이 아니라 아내와 앞으로 꾸릴 가족의 생활로 이어집니다. 계속 설명하며 버티던 사람이 그날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걷고 싶어 했습니다.

그 장면을 보니 마비스 씨의 밝은 성격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잘 웃는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고, 잘 적응했다고 해서 불편이 사라진 것도 아닌데 말이죠.

예전 회사 동료 중에 항상 밝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장난도 잘 치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다독여주고, 회식 분위기가 경직되면 먼저 풀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동료가 연차를 낸다고 하자 사람들이 “오, 데이트라도 하나 봐?”라며 장난을 쳤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어머님 기일이라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낸 연차였습니다. 여자친구도 제주도에 살아 1년에 몇 번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다들 미안해했지만 제게는 다른 것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동료가 밝게 웃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편하게 그 밝음을 받아들이고 있었을까. 마비스 씨를 보면서 그때의 일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설명을 재촉하지 않는 한 사람

유영 씨는 남편을 당장 붙잡아 이유를 캐묻지 않습니다. 혼자 생각할 시간을 내어준 뒤 함께 파전과 막걸리를 먹으며 곁을 지킵니다. 남편이 겪는 일을 대신 해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의 마음을 서둘러 정리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의 시작도 말에서 비롯됐습니다. 마비스 씨는 유영 씨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국어를 공부했고, 한국어 시험에도 도전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상대와 말하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웠다면, 결혼한 뒤에는 다른 한 사람이 상대가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유영 씨가 마비스 씨를 만났다고 해서 세상의 편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취업할 때도, 수업할 때도, 길을 걸을 때도 마비스 씨는 자신이 누구인지 다시 설명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현실의 문제를 모두 해결했다는 식으로 이 부부를 포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루 종일 자신을 설명해야 했던 사람이 집에 돌아와서는 설명부터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날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까지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두 사람에게 사랑은 그런 순간에 더 가까워 보였습니다.

처음 마비스 씨는 유영 씨와 말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방송의 마지막에는 유영 씨가 남편이 말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예전의 그 동료가 웃지 않는 날, 우리는 이유를 묻기보다 평소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던 건 아닐까요.  이번 인간극장〈그래서 사랑해요〉라는 제목은 그 생각을 지나고 나서야 조금 다르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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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KBS 인간극장 - 그래서 사랑해요 (2018. 11. 26. ~ 11. 30. 방영)

https://www.youtube.com/watch?v=Q8oX7Pt4sfo&t=33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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