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출동! 부부소방관이 간다’ 리뷰|퇴근 뒤 다시 시작되는 두 사람의 근무

인간극장 ‘출동! 부부소방관이 간다’에서 의외로 가장 오래 본 장면은 화재 현장이 아니었습니다. 24시간 근무를 마친 영재 씨가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부산 강서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조영재 씨와 장은주 씨는 부부 소방관입니다. 3교대 근무 때문에 부부가 얼굴을 보는 날도 드물고, 두 아이의 육아는 교대 시간에 맞춰 바통을 넘기듯 이어집니다. 그래서 소방서에서의 근무가 끝나도 집에 도착하는 순간 또 하나의 일과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집으로 가는 길이 다시 출근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그냥 힘들다는 표현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밤 근무가 끝나도 몸은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저는 몇년 전에 물류센터에서 야간근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 세 시가 넘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근무는 끝났는데 몸은 아직 끝나지 않은 기분이었습니다.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았고, 쉬는 날은 무언가를 하는 날이라기보다 흐트러진 몸을 원래 시간으로 돌려놓는 날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니 소방서를 퇴근하고 다시 육아로 뛰어드는 영재 씨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그 피로의 결이 조금은 짐작이 갔습니다.

물론 제가 했던 야간근무를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의 근무와 나란히 놓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밤새 일한 몸이 현관문 하나를 넘는다고 곧바로 낮의 리듬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만큼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 몸으로 영재 씨는 아이들의 밥을 챙기고 씻기며 아빠의 하루를 시작합니다. 아이스크림을 더 먹겠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좀처럼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두 아이 사이에서 인내심이 바닥날 때도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베테랑 소방관이지만 집에서는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런 인간적인 삐걱거림이 좋았습니다. 출동 현장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육아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영웅으로 그려졌다면 조금 멀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피곤하면 지치고, 아이들에게 목소리가 커졌다가도 다시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라 두 사람의 투닥거리는 생활이 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서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부부

같은 일을 하는 부부에게는 분명한 장점이 있습니다. 밤샘 근무 뒤에 찾아오는 피로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갑작스러운 출동과 불규칙한 생활도 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가 어떤 위험 속으로 들어가는지도 너무 잘 압니다. 한 사람은 출동하고 다른 사람은 아이들 곁을 지켜야 합니다. 걱정이 된다고 붙잡을 수도 없고, 아무렇지 않은 척 보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은주 씨에게도 적응할 시간은 필요했습니다. 집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지만 소방서에서는 다시 현장 감각을 찾아야 하는 대원이었습니다. 영재 씨 역시 아내의 근무 시간에는 혼자 두 아이를 돌보며 그 빈자리를 채웁니다.

방송을 보면서 ‘서로를 잘 이해하는 부부’라는 말이 꼭 다정한 대화만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의 몫을 대신 맡아주는 것, 늦은 귀가를 기다리는 것, 피곤해 보이면 굳이 이유를 묻지 않는 것도 두 사람이 함께 사는 방식이었습니다.


한때 감추었던 팔로 불을 잡는 사람

영재 씨는 화재 현장의 가장 앞쪽에서 물줄기를 다루는 방수장을 맡고 있습니다. 소방왕 선발대회에서 여러 차례 좋은 성적을 거뒀고, 세계 소방관대회 팔씨름 부문에서 1위를 한 경력도 있습니다.

그런데 영재 씨에게 팔은 처음부터 자신 있는 신체 부위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두 차례의 화상 사고를 겪으며 팔 등에 흉터가 남았고, 학창 시절에는 그 흉터를 보이지 않으려고 팔을 몸 안쪽으로 움츠리고 다녔습니다.

그랬던 팔로 지금은 무거운 장비를 들고 불길 가까이 들어갑니다. 틈틈이 팔씨름 훈련을 하는 이유도 대회 성적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체력과 팔 힘은 담을 넘거나 장비를 다뤄야 하는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합니다.

저도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손목과 팔이 아파진 뒤에야 몸을 쓰는 사람에게 신체가 곧 작업 도구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일할 마음이 남아 있어도 손이 따라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근무 중에도 운동을 거르지 않는 영재 씨의 모습이 자기관리라는 말보다는 생존에 가까운 준비로 다가왔습니다.

전국 팔씨름대회에서 두 차례 연이어 패하는 모습도 방송에 나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영재 씨가 팔씨름을 하는 이유까지 실패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한때 감추고 싶었던 팔을 세상 밖으로 꺼냈고, 그 팔로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았다는 사실은 순위로 따질 순 없으니까요.


현관문 앞에서 시작되는 또 하나의 교대

영재 씨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뒤 오랫동안 원망했던 아버지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아이를 다치게 할까 봐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당시 부모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정과 미안함이 있었을지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래된 원망이 한순간에 사라지거나 부자 사이가 갑자기 살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버지를 찾아가도 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어색함이 흐릅니다. 방송은 그 관계를 억지로 화해시키지 않고, 서툴게라도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과정까지만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영재 씨의 화상 흉터와 화재 현장, 팔씨름 도전이 이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 보고 나니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영재 씨와 은주 씨가 서로의 근무와 육아를 넘겨받는 모습이었습니다.

새벽 근무를 했던 때를 떠올리면 퇴근이라는 말만 들어도 먼저 ‘이제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퇴근 뒤에는 아이들의 하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방서에서 나온 영재 씨가 집의 현관문을 넘는 순간, 그의 하루는 끝난 것이 아니라 소방관에서 아버지로 다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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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KBS1 인간극장 ‘출동! 부부소방관이 간다’ (2023년 4월 3일~4월 7일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WCIc9WwYfyU&t=29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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