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참 예쁜 그녀’ 리뷰|아버지를 대신해 학교를 지킨 소정 씨

예전 회사에서 옆자리 직원과 자격증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자격증 얘기 끝에 그분이 포크레인 자격증에 한번 도전해 볼까 한다고 했고, 저는 속으로 되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 중장비를 떠올리는 사람이라니. 저에겐 중장비 자체도 너무 생소했는데 남자도 힘들 것 같은 걸 여자분이 도전하겠다니 말이죠.  

그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이번 인간극장을 보면서였습니다. 경주의 한 직업전문학교, 굴착기에 올라 능숙하게 레버를 다루는 박소정 씨. 그 대단한 사람이 여기 또 있구나 했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이건 중장비 잘 다루는 여자의 이야기 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하루아침에 학교와 가족을 떠안게 된 딸, 박소정 씨의 이야기였습니다.


굴착기보다 먼저 보인 메모지

화면 속 소정 씨의 첫인상은 곱고 여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굴착기 운전기능사, 지게차 운전기능사, 로더 운전기능사, 컴퓨터응용선반기능사까지 국가기술자격증만 네 개. 지게차 실기 시험을 앞둔 수강생들 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이는 실력자입니다. 처음엔 아버지가 직업전문학교를 운영하셨으니 자연스럽게 익힌 줄 알았습니다. 이유는 전혀 달랐습니다. 

2020년 1월,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쓰러졌고 학교를 운영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좋아서 행정을 맡고 중장비 수업을 도우며, 모자라는 부분은 도배든 방수든 도장이든 직접 배워서 채웠습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해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굴착기 조종 장면보다 메모지를 손에 들고 학교 곳곳을 뛰어다니는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옛 직장 동료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그분은 어느 날 갑자기 퇴사했고, 저도 이직을 하면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벌써 7년이 지났으니 지금쯤 어딘가에서 정말 굴착기를 몰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정 씨를 보면서 그분의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이유는 저마다 달라도, 여자 혼자 중장비 앞에 서기까지의 사정은 아마 간단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때는  대단하다는 말만 해주고 말았었는데 좀 더 제대로 응원해줄껄 그랬습니다.


“애로사항이 뭐냐”는 질문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버지가 예고 없이 학교를 찾아온 날입니다. 교장실을 둘러보던 아버지가 조용히 묻습니다. "애로사항이 뭐냐." 평범한 질문 한마디에 소정 씨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냅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걸 혼자 삼켜왔을지, 설명이 없어도 전해졌습니다. 

아버지는 학교를 다시 일으키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고, 딸은 힘들다는 말을 아버지 앞에서 차마 꺼내지 못합니다. "아빠는 걷는 거 열심히 하고, 나는 학교 열심히 하면 되겠네."라는 소정 씨의 말에 저도 울컥했습니다.

이 편이 남 일 같지 않았던 건 얼마 전 친정에서의 기억 때문입니다. 그날따라 부모님이 부쩍 늙어 보이셨습니다. 두 분 다 운동을 거르지 않으시고 식단도 챙기시는, 또래보다 젊게 사는 분들이에요. 그래서 저는 부모님의 나이에 대해 별생각 없이 지내왔습니다.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계실 것처럼요. 

그런데 일흔을 넘기셔서 그런지 그날은 주름도 한층 깊어 보이고 흰머리도 유난히 눈에 밟혔습니다. 그 순간 겁이 덜컥 났습니다. 건강하신 지금이 당연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처음 해보는 종류의 무서움이었습니다. 

소정 씨의 아버지도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운 사이에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갑자기"라는 말은 늘 남의 이야기 같다가 어느 날 제 이야기가 될까 두려워졌어요. 그날 저는 앞으로 더 자주 찾아뵙고, 전화도 더 자주 드리고, 같이 보내는 시간을 늘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한번 더 다짐하게 됐어요. 


아버지를 부축하기 위해 기른 근력

소정 씨가 아버지를 대하는 방식도 인상 깊었습니다. 바닷가 모래찜질에서 아버지가 혼자 못 하겠다고 하면 "아빠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아빠가 해야지."라며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그러다 아버지가 토라져 말을 안 하고, 소정 씨도 언성이 높아지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그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이었습니다. 딸로서 속은 상하지만 더 나아지려면 모질게 밀어붙여야 할 때도 있는거죠. 

퇴근 후에 크로스핏 체육관을 찾는 이유가 아버지를 더 오래, 더 안전하게 부축할 체력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말을 듣는데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대신 근력을 기르는 사람, 참 마음도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조랑말 농장에서 아이처럼 웃는 아버지, 부모님 얼굴에 마스크팩을 붙여드리며 까르르 웃는 저녁도 있었습니다. 저는 가족이 함께 웃는 장면들이 방송에 담겨 있어서 좋았습니다.


방송 이후, 소정 씨 근황

소정 씨가 자신의 유튜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아버지와 학교가 안고 있던 빚은 약 19억 원에 달했고 학교가 경매에 넘어갈 위기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방송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부담이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학교 운영만으로는 상황을 바꾸기 어렵다고 판단한 소정 씨는 인테리어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도배와 타일, 바닥 시공 등을 몸으로 익혔고, 유튜브 채널 ‘아씨’를 통해 그 과정을 공개했습니다.

현재도 ‘소정디자인’이라는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며 열심히 살고 계시네요. 

글을 마치면 친정에 전화부터 한 통 드리려고 합니다. 전화를 드리면 부모님은 늘 그러시듯 별일 없다고, 밥은 잘 챙겨 먹느냐고 되물으실 겁니다. 저희 부모님도 “별일 없다”는 말 뒤에 늘 제 걱정부터 하시는 분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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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소정씨의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ahssi/featured

소정씨의 인테리어회사 블로그: https://blog.naver.com/sojungdesign

 KBS 인간극장 (4523회)- 참 예쁜 그녀 (2022. 8. 22. ~  8. 26. 방영)

https://www.youtube.com/watch?v=5V38__T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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