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아버지의 도넛’ 리뷰|아버지의 노트를 이어받은 남매

회사 근처 먹자골목 모퉁이에 작은 도넛 가게가 있습니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곳입니다. 갓 튀겨낸 꽈배기 하나를 사서 아메리카노와 함께 먹는 건 저의 소확행인데, 인간극장 ‘아버지의 도넛’을 보고 나서는 이 꽈배기를 하나에도 누군가의 새벽이 온전히 담겨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 소중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경북 경주의 5일장. 새벽 4시면 어김없이 불이 켜지는 포장마차가 있습니다. 딸 옥경 씨와 아들 근철 씨, 그리고 어머니 공임 씨가 함께 꾸려가는 가게입니다.


유산, 암호 같은 아버지의 노트

근철 씨가 도넛을 만들게 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였습니다. 자동차 회사를 다니던 근철 씨는 위암 수술을 받고도 쉬지 못한 채 일하던 아버지를 보며 결국 부산 생활을 접고 경주로 내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건 28년 노하우가 담긴 낡은 노트 한 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트는 숙련자의 감각으로 적혀 있어 물이 찬물인지, 미지근한 물인지조차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기록이었습니다. 

재료 하나를 넣을 때마다 저울부터 찾는 근철 씨를 보면서, 단순히 빵을 배우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시간을 처음부터 다시 살아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돈 없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게으른 건 답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합니다. 근철 씨 역시 그 말을 지키듯 새벽마다 장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흔적, 몸으로 남은 부모의 습관

어머니 공임 씨는 시장에서 넘어져 허리를 다쳤는데도 하루만 쉬고 다시 나왔습니다. 자식들이 병원에 가자고 해도 "문 닫으면 갈게."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아픈 몸으로 일하는 그에게 "나가서 죽으라."며 일터로 보냈던 자신의 모습을 이제 허리가 아픈 자신에게도 똑같이 대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엄마도 그런 분입니다. 젊을 때 일을 많이 하셔서 손목이 안 좋고 손가락 관절염도 있는데, 병원에서는 최대한 쓰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야 낫는다고요. 그런데 가족들이 다 모이는 날에도 엄마는 외식보다 굳이 집밥을 손수 차려주고 싶어 하십니다. 

나물 무치고 생선 굽고 겉절이에 국까지. 내가 일찍 가도 거의 다 해놓으셨어요. 같이하자고 해도 "나는 이젠 눈 감고도 할 정도니까 별로 힘들지도 않아."라고 하십니다. 과일까지 직접 깎으시려고 해서 그건 꼭 제가 하고 설거지도 챙기는데, 그 정도로는 엄마 손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속상합니다. 그래도 당신이 좋아서 하시는 일이라 뿌듯해 하십니다.

공임 씨를 보면서 그 모습이 계속 겹쳤습니다. "문 닫으면 갈게."와 "별로 힘들지도 않아."는 사실 같은 문장이지요. 부모님들은 자기 몸보다 가족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말릴 수도 없고, 말려도 소용이 없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아버지가 쓰던 반죽통에는 보온을 위해 담요를 두 겹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근철 씨도 같은 방식으로 반죽을 다룹니다. 자신도 모르게 완벽주의자가 되어가는 스스로를 보며 "아빠도 이렇게 참고 버텼겠구나."라고 말합니다. 기술보다 삶의 태도가 먼저 대물림되고 있었습니다.


남은 사람들, 뒤늦게 전한 부고와 다시 열린 장날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치매를 앓는 할머니에게 아들의 죽음을 알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며느리는 충격을 받을까 봐 차마 말하지 못하다가, 결국 영정 사진을 보여드리며 뒤늦게 전합니다. 할머니는 영정 사진 앞에서 그제야 아들의 죽음을 확인하고 오열합니다. 그런데도 며느리를 탓하지 않고 평생 고생한 며느리의 등을 토닥였습니다.

힘든 현실 속에서도 이 가족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남매는 티격태격 장난을 치고, 근철 씨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 짧은 가족 여행을 다녀옵니다. 몸이 아픈 와중에도 친구의 가게를 돕기 위해 밤새 부산까지 달려가는 모습에서, 의리와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예전에는 '옥경이 아빠', '옥경이 엄마'로 불리던 가족이 이제는 '옥경이 도넛'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이어갑니다. 영상을 다 보고나니 엄마 생각이 납니다. 다음번에 내려가면 제가 꼭 음식을 해드리겠다 다짐했습니다. 엄마는 또 "별로 힘들지도 않아."라고 하실 게 뻔하니 좀더 일찍 내려가서 더 바삐 움직여야겠습니다. 

방송 속 가족이 장사하던 경주 5일장 가운데 외동시장(입실장)은 매월 3일과 8일 열립니다. 여러 장터를 다니며 장사한 가족이므로 현재 영업 여부는 방문 전에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옥경이 도넛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입실시장길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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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KBS 인간극장 - 아버지의 도넛 ( 2015.02.09.~02.13.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WmpKPSLrkMs&t=211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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