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사랑은 기적을 타고' 리뷰|5%의 확률을 걸어서 건너온 부부

퇴근길에 채널을 돌리다 손이 멈췄습니다. 벤치에 누워 바벨을 들어 올리는 남자, 옆에서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아내. 어딘가 낯이 익다 했더니 예전에 위라클 유튜브 채널에서 봤던 그 부부였습니다. 

하반신 완전마비 판정을 받은 뒤 10년 동안 재활을 이어가 다시 걷게 된 장애인 역도선수 양세욱 씨, 그리고 루푸스를 앓으면서도 화상영어 수업과 자신의 일상을 이어가는 원윤희 씨. 반가운 마음으로 앉았다가, 끝날 때쯤엔 몇 번이나 울컥했는지 모릅니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움직이기까지

세욱 씨는 스물셋에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불을 털다 4층에서 떨어졌고, 하반신 완전마비 진단과 함께 다시 걸을 확률은 5%도 안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앞에서 그는 울지도 않았고 오히려 어머니께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는데... 저는 솔직히 그 말이 실화일지 믿기 힘들었습니다. 

하루 열 시간 넘는 재활, 1년 반 만에 겨우 움직인 오른쪽 엄지발가락 하나. 재활 중에는 무리한 운동으로 횡문근융해증까지 겪었고, 사고로 손상된 신경 때문에 지금도 복합부위통증증후군, CRPS를 앓고 있다고 합니다. 5%라는 숫자 뒤에 하루 열 시간씩 이어진 재활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1년 반을 쏟아 오른쪽 엄지발가락 하나가 처음 움직였을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저는 뒤에서 이야기할 제 무릎 재활에서 한두 달 만에 온 작은 변화에도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는데, 그 몇 배의 시간을 발가락 하나에 걸고 버틴 사람의 마음은 감히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욱 씨는 5분을 걸었을 때의 피로와 통증이 비장애인이 5~6시간 걸었을 때와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감각이 온전치 않은 다리로도 휠체어를 타지 않습니다. 이유를 묻자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기적을 받은 만큼 그 기적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휠체어에 앉는 순간 걷는 법을 잊게 될 거라고요.


내 무릎이 다시 달리기까지

세욱씨의 그 말이 제게 유난히 깊게 와닿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왼쪽 무릎에 수술 자국이 있습니다. 

국민학교 5학년 체육대회, 반 대표 이어달리기 주자로 뛰다가 코너를 돌 때 무릎이 꺾이면서 심하게 넘어졌습니다. 그때는 삔 줄만 알고 동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말았는데, 그 뒤로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달리기를 조금만 빨리 하거나 내리막에서 발을 잘못 디디면 같은 방식으로 무릎이 꺾였습니다. 그때는 10분쯤 앉아 있으면 멀쩡해져서 병원 갈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러다 고3 올라가기 직전 겨울, 화장실에서 미끄러지며 또 무릎이 꺾였는데 그날은 걷지를 못했습니다. 큰 병원 정밀검사 끝에 나온 진단명이 습관성 슬개골 탈구. 무릎뼈가 자꾸 바깥으로 빠지는 병이었고, 결국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수술 후에 걷는 건 됐지만 뛰는 건 무서워졌습니다. 또 빠질까 봐 내리막길은 기다시피 내려갔고, 다리 운동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그렇게 십수 년을 피해 다니다 30대 중반이 되니 왼쪽 다리가 눈에 띄게 약해져 있었습니다. 

이대로 나이 들면 6~70대쯤엔 이 다리를 아예 못 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제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칭부터, 헬스장 자전거를 천천히, 매트에서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수준부터요. 한두 달 지나니 조금씩 단단해지는 느낌이 왔고, 반만 앉는 스쿼트를 거쳐 가벼운 조깅까지 가는 데 6개월이 넘게 걸렸습니다. 

처음으로 가볍게 뛰어본 날을 기억합니다. 십수 년 만의 달리기라고 하기엔 민망한, 빠르게 걷는 것과 별 차이 없는 속도였는데도 무릎이 버텨준다는 사실 하나에 코끝이 찡했습니다. 몸을 되찾는 일은 그렇게 시시해 보이는 한 걸음들이 쌓여야 이루어진다는 걸 알게됬습니다.

무릎 하나에 6개월이었습니다. 두 다리 전부를, 감각조차 없는 상태에서 10년. 그래서 저는 세욱 씨의 걸음에 기적이라는 말 말고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휠체어를 마다하는 마음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제 무릎 재활을 세욱 씨의 10년과 절대 같은 선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어렵게 되찾은 몸을 안 쓰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 두려워진다는 걸, 저도 무릎으로 배웠으니까요.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

윤희 씨 이야기도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루푸스는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병이라 아플수록 더 외로웠다고 했습니다. 승무원으로 일하던 중 발목을 다친 뒤 열다섯 번이 넘는 수술을 받았고, 그 후 루푸스 진단까지 받았습니다. 자외선을 받으면 증상이 심해져 햇빛조차 마음껏 못 쬐고, 관절이 뻑뻑해지고 다리가 붓는 통증을 홀로 견디는 날들. 

그럼에도 화상영어 수업을 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씩씩했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입어보고 온 날 지쳐 쓰러지듯 눕는 장면에서는, 남들에겐 설렘뿐일 하루가 누군가에겐 체력전이라는 게 실감 났습니다. 

티가 나지 않는 아픔이라는 말은 저도 조금 압니다. 제 무릎도 겉보기엔 멀쩡하거든요. 왜 내리막에서 그렇게 느린지, 왜 다들 하는 운동을 못 하는지는 설명하자면 길어서 대개는 그냥 삼키게 되지요. 규모는 비교도 안 되지만, 설명하기 애매한 몸의 사정을 혼자 안고 있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는 짐작이 갔습니다.

서로 다른 아픔을 겪은 두 사람인데, 아프다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이라는 게 화면에서 느껴집니다.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처음엔 성급하게 들렸는데, 이만한 이해가 오가는 사이라면 시간이 무슨 상관인가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습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두 사람이 청첩장을 들고 찾아간 곳은 10년 전 5%의 가능성을 말했던 의사 선생님의 진료실이었습니다. 제 발로 걸어 들어오는 세욱 씨를 보고 놀라는 선생님, 새벽부터 쪄 온 떡, 그리고 터지는 울음. 저도 그 장면에서 같이 울었습니다.


방송 이후, 두 사람의 근황

두 사람은 유튜브 채널 ‘참치마윤’(@ukheecouple)을 통해 재활과 루푸스 이야기, 두 사람의 일상을 나눠왔습니다.

2026년 5월 인터뷰에서 세욱 씨는 현재도 인천광역시 장애인체육회 소속 장애인 역도선수로 훈련하며 패럴림픽 출전권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자신의 훈련 영상을 보고 운동을 시작했다는 댓글이 힘이 돼 SNS에도 영상을 계속 올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요즘도 내리막길에서는 저도 모르게 걸음이 느려집니다. 그럴 때면 세욱 씨가 지금의 보행을 지키기 위해 여전히 재활을 계속한다는 말을 떠올립니다. 저도 속도를 재촉하지는 않되, 두려움 때문에 다시 다리 쓰는 일을 피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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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KBS 인간극장 - 사랑은 기적을 타고 (2025. 9. 1. ~ 9. 5. 방영)

https://www.youtube.com/watch?v=LpuaAXL5lq8

부부의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ukheecou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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