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세쌍둥이 육아를 명받았습니다' 리뷰|행복이 에어컨 바람이어도 괜찮은 이유

새벽 네 시 반, 아이 넷의 아빠 김경훈 씨가 젖병 소독을 시작합니다. 아내 김은영 씨는 두 시간 뒤 출근을 위해 세수를 하고, 아이들이 깰까 봐 고양이 걸음으로 현관을 나섭니다. 세쌍둥이와 첫째 도준이까지, 아이 넷 있는 집은 하루가 이렇게 열립니다. 둘 다 육군 대위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다른 전투를 치르고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이 생긴 시간

경훈 씨는 아이 넷을 커다란 수레에 태우고 첫째 도준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킨 다음 카페에 잠깐 들렀습니다. 커피를 포장해 나오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커피 한 잔 마실 수 있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게 행복이지 않을까요." 아이 네 명을 혼자 돌보는 사람이 원하는 행복이 고작 커피 한 잔이라니. 그래도 경훈 씨의 얼굴을 보니 찐으로 행복한 사람의 표정이라 마음이 놓였습니다. 

사실은 저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엄청 더운 여름이었는데 회사 사람들이랑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시원한 냉모밀이 먹고 싶어서 15분쯤 걸어서 찾아갔는데 웨이팅이 길었습니다. 점심시간은 한 시간뿐이라 기다릴 수가 없어서 할수 없이 옆에 있는 백반집으로 들어갔어요. 

따뜻한 밥이 맛은 있었는데 먹으면서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최대한 빨리 먹고 아아를 한 잔씩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는데 에어컨 바람이 얼굴에 닿던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한 거예요. 피서지가 따로 없다고 느꼈습니다. 냉모밀을 먹었다면 그냥 시원한 점심이었겠지만, 백반집에서 땀 흘리고 들어온 덕분에 에어컨 바람이 피서가 됐습니다. 

제가 느낀 더위와 아이 넷을 돌보는 고단함이 같을 리는 없습니다. 다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평범했던 것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는 건 알 수 있습니다. 그게 경훈 씨에게는 커피 한 잔이었고, 저에게는 에어컨 바람이었습니다. 


육아휴직 계획서가 사라진 자리

경훈 씨는 두 달 전부터 육아휴직 중입니다. 세쌍둥이를 낳은 뒤 은영 씨가 먼저 육아휴직을 했고, 복직할 때가 되자 경훈 씨가 육아의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자는 시간을 이용해 철인 3종 경기, 출판, 유튜브 같은 것들을 해볼 참이었습니다. 휴직 계획서에 그렇게 적어두기까지 했다고요. 

막상 해보니 그럴 틈이 없습니다. 기저귀 하루 30개, 이유식 세 명 분리 배식, 수유 후 즉시 목욕, 아이들 손발톱 여든 개 관리. 거기에 첫째 도준이 등하원까지 수레에 네 명을 태워 움직입니다. 세탁기보다 바삐 돌아가는 게 아빠의 시간표라는 말이 과장이 아닙니다.

저도 몸이 아파 2주간 병가를 냈을때 처음에는 시간이 생겼다는 생각부터 했습니다. 그동안 미뤘던 글도 쓰고 집도 정리하고, 몸이 조금 나아지면 천천히 운동도 해볼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병원에 다녀오고 좀 쉬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2주 동안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언가를 새로 해내는 게 아니라 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경훈 씨의 휴직 계획서가 엉뚱하게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밥 한 끼도 제대로 못 먹고, 쓰레기를 버리러 잠깐 혼자 나가는 게 유일한 자유시간이었습니다. 그 2분을 두고 "한 바퀴 돌고 들어가고 싶은데 애기들이 안 자서 빨리 들어가야겠죠"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웃으면서도 가슴 한켠이 짠했습니다. 아이 없이 혼자 사무실에서 밥 먹으러 나가고, 퇴근하고 편의점에 들러 과자를 고르던 제 일상이 얼마나 느긋한 거였는지를 새삼 생각했습니다.

은영 씨가 반년 넘게 아이들을 전담해 왔을 때 경훈 씨는 몰랐습니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직접 해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직장 다니는 아빠들, 제발 집에 일찍 들어가세요.” 독박 육아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경훈 씨가 남편들에게 하고 싶어진 말이었습니다.

은영 씨는 복직 후 부대까지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새벽같이 오가면서, 도윤이 아프다는 소식을 출근길에 문자로 받고도 달려오지 못하고 전화로만 상황을 들었습니다. 그 눈물을 "출근하면서, 집에 와서도 나오려 할 때마다 다시 집어넣고 또 집어넣었다"고 했습니다. 

한 사람이 힘들다고 설명하고 다른 사람이 듣는 것과, 그 하루를 직접 살아보는 것은 달랐습니다. 번갈아 육아휴직을 한 뒤 두 사람은 상대가 무엇 때문에 지쳤는지를 전보다 빨리 알아보는 듯했습니다.


영동에서 올라온 부모님

경북 영동에서 올라오는 조부모님은 한 달에 기차표값만 40만 원이 넘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올라오면 반찬을 만들어 냉장고를 채우고, 손톱 발톱을 깎아주고, 목욕을 시키고, 재웁니다. 아버지는 기저귀를 갈고, 어머니는 어묵을 볶아 챙겨 보냅니다. 

부모님의 수고는 기차표값의 숫자로 보니 더 실감이 났습니다. 반찬이 채워진 냉장고와 깎여 있는 아이들의 손톱이 두 분이 다녀간 흔적이었습니다.

지원군이 있는 전투와 없는 전투는 다릅니다. 이 가족이 씩씩하게 웃을 수 있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면 바로 그 기차표값만큼의 사랑이겠습니다.


방송 이후, ‘일삼파파’가 된 경훈 씨

방송 이후 경훈 씨가 휴직 계획서에 적어두었던 일 가운데 하나는 실제가 됐습니다. 2025년 《아빠 육아, 서툴러도 괜찮아》를 펴냈고, SNS와 강연을 통해 자신이 직접 배운 육아 이야기를 다른 아빠들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일삼파파’는 첫째 한 명과 세쌍둥이를 키우는 아빠라는 뜻으로 경훈 씨가 사용하는 이름입니다.

2026년 3월 공개된 인터뷰에서 경훈 씨는 복직하는 대신 10여 년간 몸담은 군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업 아빠로 아이들을 돌보면서 아빠 육아에 관한 강연과 집필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은영 씨는 2025년 소령으로 진급했고, 인터뷰 당시 첫째 도준이는 한국 나이로 일곱 살, 세쌍둥이 서윤·서준·도윤이는 33개월이 됐다고 합니다.

방송에서 커피 한 잔 마실 틈을 행복이라던 아빠가 그 바쁜 시간 속에서 결국 책 한 권을 써냈다는 사실이 반가웠습니다. 휴직 계획서가 완전히 틀렸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계획보다 조금 오래 걸렸고, 그사이에 책에 쓸 이야기가 훨씬 많아졌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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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KBS 인간극장 - 세쌍둥이 육아를 명받았습니다 (2024. 2. 19. ~ 2. 23. 방영)

  https://www.youtube.com/watch?v=5yT3Rhwjim4&t=34s

- 방송 이후 참고: 여성동아 - “‘엄마가 많이 바쁜가 봐요’ 질문 안 나오는 세상 만들고 싶어요”

  https://woman.donga.com/people/article/all/12/61332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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