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유경 씨만 있으면' 리뷰|화물차 핸들을 잡은 네 아이 엄마

회사 답답한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모니터만 보다가 퇴근하면, 신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더 지쳐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몸을 쓴 것도 아닌데 머리가 텅 비어 있는 느낌. 그럴 때마다 그냥 다 던져두고 차끌고 어디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유독 파랗게 보이는 날이면 특히 더요. 물론 그냥 생각으로만 끝났지만요.

그런데 유경 씨는 그걸 직업으로 살고 있습니다. 새벽 안개를 뚫고 출발해서, 산길을 달리면서, 봄엔 꽃구경 가을엔 단풍 구경이라고 합니다. 물론 300kg짜리 건초 묶음을 장비도 없이 밀어 내리고, 25kg 사료 포대를 쌓는 일이 따라붙지만요. 그래도 유경 씨는 "드라이브가 아니라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찐으로 나오는 표정을 보니 진심이었습니다.


새벽 안개 속의 출근길

그 말을 듣고 예전 퇴근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하루는 버스를 안 타고 집까지 걸어간 적이 있습니다. 걸으면 40분이면 되는 거리인데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는 길에 공원이 있었거든요. 꽃 앞에 쪼그려 앉아 사진 찍고, 풀냄새 흙냄새 맡고, 노을 보느라 20분을 더 쓴 겁니다. 그날은 집에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 하나도 지치지 않았습니다. 같은 퇴근길이었는데 말이죠. 유경 씨가 매일 하는 게 바로 그거였습니다. 같은 길을 여행으로 바꿔버리는 것. 저는 어쩌다 하루 해본 일을 이 사람은 5톤 화물차 운전석에서 매일 합니다.

그 운전석에 여자가 앉아 있다는 것만으로 "사장님 어디 가셨어요?"를 반복해서 듣는 사람인데, 억울해하거나 방어적이지 않습니다. 그 편견을 그냥 넘겨 버립니다. 그 태도가 더 멋있습니다.


네 아이 엄마의 하루, 퇴근이 없는 삶

저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일단 소파에 눕는 게 먼저였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아무도 말 걸지 않았으면 하는 그 30분이 하루 중 제일 소중했습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유경 씨는 배달 끝나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앞치마를 맵니다. 쇼파에 1초라도 앉을 시간 없습니다. 아이들이랑 수제비 반죽을 하고, 밀가루 묻은 손으로 코끼리니 호랑이니 만들어대는 아이들 곁에서 웃고 있습니다. 저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건지 화면을 보면서 궁금했습니다. 리얼로요.

주말엔 친정어머니 횟집으로 나갑니다. 어머니가 기계에 손가락을 다치셨던 날, 임신 8개월이었던 유경 씨가 처음 그 일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회 한 마리 뜨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손님손에 들려 보내긴 보냈다는 장면에서 얼마나 진땀을 뺐을지 상상이 안됬습니다. 만삭의 몸으로 손 떨면서 회 뜨던 그 날. 하지 않으면 어머니 가게가 문을 닫아야 하니까 그냥 했겠죠.

화물차, 횟집, 김밥집 자원봉사, 화장품 부업, 시댁 김장, 친정 청소까지.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이면 진수성찬이고 그마저 거르는 날도 많습니다. 저는 투잡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사람인데 유경 씨는 "바빠야죠" 합니다. 정말로 그런 얼굴이어서 잠시 화면을 멈추고 들여다봤습니다.

심지어 하지 말라는 일도 기어이 배웁니다. 볏짚 포장 기계를 가르쳐 달라고 졸라서 결국 남편에게 배워내고는, 새로운 기계를 배우는 건 언제나 재밌다며 웃습니다. 일거리가 하나 늘어났는데도요. 옆에서 지켜보는 희균 씨의 착잡한 얼굴과 신이 난 유경 씨의 얼굴이 한 화면에 잡히는데, 그 대비가 이 부부의 10년을 압축해서 보여줬습니다.


결혼 10년, 이 부부가 여전히 잘 사는 비결

사무실이 답답하다고 느꼈던 건, 사실 공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이게 내가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쌓인 거였습니다. 이유가 뚜렷한 사람은 어디서든 버티는 법인데 저는 흐리멍텅 했던거죠.

유경 씨는 이유가 선명합니다. 새벽에 자는 아이들 얼굴 한번 보고 나가고, 저녁에 돌아와 그 얼굴 다시 보면 하루가 리셋된다고 합니다. 희균 씨 얘기를 꺼낼 때도 목소리가 살짝 달라졌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시절에 나타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한다거나 좋다거나 그런 말 대신, "어느 순간 그 사람한테 기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진짜 믿음은 그렇게 생기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처럼 화려하지 않게, 어느 날 보니 이미 되어 있는 방식으로요.

결혼 10주년 기념일에 나란히 논일을 하면서 "놀 때가 아니야, 돈 벌어야지"라고 동시에 말하는 부부. 다르게 생겼는데 10년이 이 두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생엔 만나지 말자"고 했다가 바로 "이번 생은 재밌게 살고 있잖아"라고 웃는 장면에서 저도 피식- 따라 웃었습니다.

방송이 끝나고도 그 비포장 산길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무실 창밖을 보며 달려보고 싶다고 상상했던 길과 닮아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고된 노동도 가족의 무게도 함께 실려 있지만, 핸들을 잡은 유경 씨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한 시간짜리 퇴근길이 다시 걷고 싶어졌습니다. 공원을 지나며 노을을 20분쯤 올려다보던, 제 인생에서 제일 여행 같았던 퇴근길이요.


인간극장 그 후, 유경 씨네 근황

유경 씨의 근황이 궁금해서 찾아보았습니다. 유경 씨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해져서 반찬가게를 새로 열어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1시까지 주문을 받아 당일 요리, 당일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데, 하루 20가지 가까운 반찬을 50인분씩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새벽같이 화물 운송을 나가는 희균 씨도 짬이 날 때마다 가게로 와서 도와줍니다. 

부부는 종일 밥 한 끼 못 먹고 일하는 날이 많아서, 포장하고 남은 반찬으로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늦은 점심을 먹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바쁜 하루인데 유경 씨는 "지금은 얘네 키우는 맛에 하루하루가 아까워요"라고 말합니다. 다섯째를 못 낳은 게 지금도 아쉽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경 씨는 변한 게 없습니다. 일은 더 늘었는데 표정은 그대로입니다. 그 단단함이, 여전히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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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KBS 인간극장

※ 참고자료 

- KBS 인간극장 - 유경씨만 있으면 (4485회)

https://www.youtube.com/watch?v=hrdyjdN7WOE

- KBS 교양 - 3년 만에 다시 만난 유경씨네 4남매! 다섯째를 꿈꾸던 바람은 과연 이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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