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들어가서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 솔직히 저는 살짝 의심부터 하고 봤습니다. 민간요법을 이야기하려는 건가 싶어서요. 그런데 인간극장 ‘곰작골에 살어리랏다’를 보고 나니 그 의심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하나 있었거든요.
아내를 데리고 들어간 산
19년 전, 윤자 씨는 관절염과 만성신경통으로 혼자 거동하기 어려울 만큼 몸이 아팠습니다. 남편 영찬 씨 역시 간경화로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고요. 부부는 도시에서 하던 일을 정리하고 전남 나주의 깊은 산골인 곰작골로 들어갔습니다.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던 산속에 직접 집을 지으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말로 들으면 ‘자연 속에서 살아보기로 했다’는 한 문장으로 끝나지만, 방송에서 본 생활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계곡물을 끌어다 쓰고 황토와 콩기름으로 방바닥을 만들었으며, 계절마다 산에서 나는 나물과 약초를 구했습니다. 아픈 아내를 데리고 이런 곳으로 들어간 영찬 씨의 선택은 어지간한 결심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겁니다.
윤자 씨가 조미료 없이 견과류와 들기름으로 나물 맛을 살려내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찔레순과 머위잎 같은 산나물을 캐고, 영찬 씨는 대나무를 잘라 밥그릇과 젓가락을 만들었습니다. 대나무 안에 쌀과 삼겹살을 넣어 구운 통밥은 캠핑 유튜브에서나 볼 법한 요리였지만, 이 집에서는 평범한 점심이었습니다.
이것만으로 자연식이 부부의 병을 고쳤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부는 곰작골로 들어온 뒤 몸과 생활이 전보다 나아졌다고 말했고, 윤자 씨의 밥상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한달 동안의 강릉 할머니 밥상
방송에서는 아토피를 앓던 손녀 서은이를 위해 큰딸 성례 씨도 곰작골로 들어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토피가 심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피부과 연고를 달고 살았어요. 그때는 스테로이드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조심하지도 않았고, 처방받은 연고를 듬뿍듬뿍 발랐습니다. 그런데 내성이 생긴 건지 점점 더 많이, 더 자주 발라야 가려움이 가라앉았습니다.
그러다 방학 때 한 달을 강릉 할머니 댁에서 지내게 된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국을 먹고, 밭에서 난 감자와 가지로 만든 반찬을 먹고, 간식으로는 할머니가 얼려둔 홍시를 아이스크림 대신 먹으며 지냈어요. 짜장면 한번 안 시켜 먹은 한 달이었습니다.
근데 지나고 나서 보니 그 한 달 동안 제가 연고를 거의 안 썼더라고요. 그게 너무 신기했습니다. 물론 서울 집에 돌아와 햄버거를 먹으면서 가려움은 다시 시작됐지만요.
그래서 저는 곰작골의 손녀 이야기를 무조건 믿을 수도, 함부로 의심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연이 병을 고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먹는 것과 생활환경에 따라 제 피부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저도 그 한 달 동안 직접 겪었으니까요. 윤자 씨가 계절에 나는 음식을 먹는다고 했을 때, 할머니의 여름 밥상도 정확히 그런 밥상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습니다.
현준이를 가족으로 맞고 싶었던 부부
사실 이게 핵심인데 이 방송에서 제가 가장 놀란 것은 현준이 이야기였습니다. 방송 당시 쉰다섯이었던 윤자 씨 부부는 생후 13일부터 위탁해 돌본 현준이를 가족으로 맞아들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부부의 나이를 걱정한 가족들은 입양에 선뜻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대나무 통밥보다 현준이를 바라보던 영찬 씨의 표정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 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가 되는 마음에도 정해진 나이가 있는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작골에는 부부만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큰딸 가족과 동서 가족도 곁에 있었고, 버섯 하나를 따도 나눠 먹고 아이의 생일이면 함께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한 부부의 산골 생활인 줄 알았는데, 보다 보니 곰작골로 따라 들어온 가족들의 이야기가 함께 놓여 있었습니다.
강릉의 여름 밥상을 떠올리며
방송을 보며 처음에는 곰작골의 맑은 물과 계절 음식이 부부를 낫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산에서 보낸 시간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보였습니다. 영찬 씨는 아픈 아내를 데리고 도시를 떠났고, 윤자 씨는 가족이 먹을 밥상을 매일 차렸습니다. 자연이 회복의 환경을 내어주었다면, 그 안에서 생활을 이어가게 한 것은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의 손이었습니다.
강릉에서 보낸 그 한 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된장국, 감자와 가지, 얼린 홍시가 제 피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음식을 차려주던 사람이 할머니였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저는 곰작골의 밥상을 보면서 오래전에 먹었던 할머니의 여름 밥상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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