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생방송 무대, 커튼이 열리자 케이티는 아만다를 봤습니다. 나중에 그 순간을 물어보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거울 속에서 내가 걸어 나오는 것 같았다고. 33년 동안 존재도 몰랐던 사람과 처음 마주쳤는데, 케이티에게는 낯선 느낌이 전혀 없었던 겁니다. 둘은 첫 번째 전화 통화를 9시간 했다고 합니다. 그럴만 했습니다.
닮은 사람을 찾는 일
케이티는 생후 12일 무렵, 파란 보자기에 싸인 채 경기도 포천의 보화보육원 앞에서 발견됐습니다. 자신에 관한 정보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고, 생후 4개월 무렵 미국 LA의 한 가정에 입양됬고 일곱 살 위 오빠가 생겼습니다.
가족은 따뜻했습니다. 아빠는 한국 마트에서 장을 봤고, 엄마는 초등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쳤습니다. 딸이 자신의 뿌리에 관심을 갖자 온 가족이 함께 알아가려 했습니다. 그 집 김치냉장고를 아빠가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따뜻한 가족 안에서 자랐지만, 입양인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받아들이는 일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케이티는 20대까지 내성적이었고, 입양아라는 사실 때문에 정체성으로 심하게 방황하기도 했어요. 한때는 자신을 버린 나라라는 생각에 한국 자체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 시절 한국 식당에서 먼저 말을 걸어준 하호순 씨는 케이티에게 한국 엄마가 되어주었고, 두 사람의 인연은 7년간 이어졌습니다. 하호순 씨는 케이티에게 자신이 버려졌다고만 생각하지 말라고, 친어머니에게도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해줬습니다.
그러다 서른셋이 된 해, 유전자 검사 결과를 열었다가 케이티는 화면을 멈췄습니다. 100% 일치. 일란성 쌍둥이. 아만다 던포드.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미국 동부 끝에 살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광고인 줄 알았다고 했어요. 바로 믿는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아니 갑자기 나랑 유전자가 100% 일치하는 사람이 있다니 상상이나 해봤겠냐구요.
그러다 오빠가 “그런걸 왜 속이겠어”라고 해서야 믿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때 부모님도 옆에 계셨는데 엄마가 바로 울었다고 합니다. 딸이 하나 더 생겼다고.
아만다는 일곱 살 무렵 자신에게 쌍둥이 자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뒤로 다른 한 명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상상하며 자랐고, 유전자 검사 정보를 등록해 둔 채 4년을 기다렸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결과를 확인했지만, 화면에 나타난 이름의 의미는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찾았고, 한 사람은 발견된 셈입니다.
그런데 정작 처음 얼굴을 마주한 순간에는 그 차이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래 기다린 아만다도 갑자기 자매가 생긴 케이티도 서로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하지 않았으니까요.
처음인데 낯설지 않은 사람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처음인데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던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오래 기간 모임을 함께 해온 회사 멤버들이 있는데, 그중에 도무지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이 한명 있어요. 멤버들 다 같이 있을 땐 그 사람이랑도 같이 떠들고 웃고 완전 친합니다. 그런데 뭔가 단둘이 있으면 서먹합니다. 희한하게 거리가 느껴지고 속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모임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냥 회사 동료로 스쳐 지나갔을 겁니다.
왜 그런지 딱히 이유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습니다.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다 가까워지는 건 아니더군요. 그사람도 저에 대해서 똑같이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Uno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달랐습니다. 키도 크고 인상도 강한 편이라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속으로 ‘헉! 저 사람 무섭겠다’ 고 생각한다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어요. 그냥 원래 알던 사람처럼 스스럼없이 대했고, 그래서 더 빨리 친해졌습니다.
나중에 주변 사람들이 우리 둘이 닮았다고 하더라구요. 풍기는 이미지랑 분위기가 비슷하다고요. 별생각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진짜 그렇기도 했습니다. 닮아서 편했던 건지, 편해서 닮아 보인 건지는 지금도 잘 구분이 안 됩니다.
처음 만났는데 원래 알던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오래 봤는데도 계속 낯선 사람이 있습니다. 시간이 그 거리를 만드는 게 아닌가 봅니다. 케이티와 아만다를 보면서 그 생각이 다시 났습니다.
거울 앞에서
케이티와 아만다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엄지손가락을 나란히 꺾으며 웃었습니다. 그 모양이 똑같았습니다. 어릴 때 웃으면 잇몸이 많이 보여서 싫었는데, 아만다도 그걸 감추려고 연습해 왔다고 했어요. 33년을 따로 살았는데 같은 것이 신경 쓰였던 겁니다.
둘 다 학창 시절에 모범생은 아니었다는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살짝 자랑스럽다는 듯 웃으며 그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이 꼭 오래된 친구처럼 보였어요.
라스베이거스 여행 마지막 날, 캐리커쳐 화가 앞에 앉은 두 사람을 화가는 쌍둥이라고 바로 알아봤습니다. 둘은 웃으면서 33년 만에 처음 만났다고 했습니다. 화가도 한참을 웃었습니다.
커튼이 열렸을 때 두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처럼 서 있지 않았습니다. 처음인데도 원래 알던 사람처럼 느껴지는 사이가 있다는 걸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알아본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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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KBS 인간극장 - 케이티와 아만다 (2017. 12. 25.~12. 29.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Y8dMXaHpV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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