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호미 엄마와 울보 아들' 리뷰|걱정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부모의 시간

방송을 다 보고 나니 제목이 왜 '호미 엄마'였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호미가 그냥 농기구가 아니었습니다. 평생 양숙 씨 손에 들려 있던 시간을 닮은 거였습니다. 아들 성민 씨도 어머니를 위해 쓴 시에서 등이 굽고 거친 호미 자루가 어머니를 닮았다고 했습니다. 두부를 만드는 새벽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다 보고 나서도 며칠은 이 가족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궁이 앞에서 보낸 새벽

양숙 씨는 새벽 서너 시간을 아궁이 앞에서 혼자 보냅니다. "혼자 있을 때는 불이랑 대화한다"는 말이, 흔히 쓰는 '외롭다'는 표현보다 훨씬 정직하게 그 하루를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힘든 걸 힘들다고 말하는 대신 불에게 말을 거는 사람. 8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어린 동생들을 업어 키우고, 시집와서도 모진 시집살이를 견뎠던 세월이 그 침묵 속에 그대로 쌓여 있었습니다. 두부를 만드는 15년 동안, 이 사람의 하루는 늘 남들이 잠든 시간에 시작됐습니다.


죄책감, 걱정이 현실이었을 때 그리고 기우였을 때

아들 성민 씨는 자동차 부품공장을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어머니 곁으로 내려왔습니다. "엄마 생각에 잠도 안 오고 우울증이 올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거칠어진 손과 굽은 허리를 직접 보고서야 "왜 이렇게 망설였나, 불효자다"라며 자책하는 장면에서 저는 비슷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저도 한동안 회사 일이 바빠서 엄마한테 연락을 잘 못 드린 시기가 있었어요. 엄마는 갱년기 때부터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그 이후로도 뭔가 우울해 보이고 표정도 어둡고 말수도 줄어드셨습니다. 속으로는 계속 걱정하면서도 전화 한 통 거는 게 그렇게 힘들었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또 미뤘습니다.

그러다 작정하고 시간을 내서 엄마를 뵈러 갔습니다. 심심하게 집에서 드라마나 보고 계실 줄 알았는데, 구민회관에 나가셔서 캘리그라피를 배워 액자까지 만드시고, 라인댄스를 신나게 추시고,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도 여럿 사귀어 활기차게 지내고 계셨습니다.

성민 씨는 걱정이 현실이어서 죄책감을 느꼈는데, 저는 다행히도 걱정이 기우여서 오히려 감사한 쪽이었습니다. 제가 멀리서 걱정만 하고 있는 동안에도 엄마는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다.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라인댄스를 추면서, 제가 알지 못했던 일상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계셨습니다. 연락을 자주 드리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예순일곱에 처음 받아본 미술 수업

양숙 씨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대목이 특히 마음에 남았어요. 학교에 다닐 때는 시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사람이 새벽에 들려온 닭 울음소리에 가슴이 뛰어 첫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식당 벽에 직접 쓴 시와 작은 그림을 붙여두었던 양숙 씨는 아들의 주선으로 그림 선생님을 만나 처음 제대로 된 미술 수업도 받았습니다. 예순일곱에 큰 도화지 앞에 앉아 붓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데, 저도 덩달아 설렜습니다.

엄마가 만든 캘리그라피 액자를 보면서 저는 양숙 씨의 시와 그림을 떠올렸습니다. 두 사람의 삶이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뒤늦게 자기 손으로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닮아 보였습니다.

양숙 씨는 식당 벽에 붙여두었던 작은 그림을 지나 큰 도화지 앞에 앉았습니다. 엄마도 집 안에만 계실 거라는 제 짐작을 깨고 사람들과 라인댄스를 추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제가 걱정하며 그렸던 모습보다 훨씬 바쁘고 생기 있게 자기 시간을 살고 있었습니다.

성민 씨가 내려왔다고 해서 양숙 씨의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몸은 아프고 남편도 편찮으셨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도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아궁이 앞에서 혼자 견뎌야 했던 무게를 곁에서 보고 나눠 들 사람이 생겼습니다. 그 와중에도 양숙 씨가 자신의 시와 그림을 놓지 않았다는 점이 저는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요즘도 라인댄스에 나가시느냐고 물었더니, 이번 주에 발표회가 있다며 신이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이번만큼은 제 걱정이 틀려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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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KBS 인간극장  - 호미 엄마와 울보 아들 (2021. 12. 13. ~ 12. 17.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s4FBS5qSiBE&t=6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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