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아버지와 대게' 리뷰|일을 놓지 못하는 아버지의 밥상

허리를 다친 노선장이 방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밥상을 받습니다. 아내가 차려온 갓 지은 밥과 뜨끈한 국. 사정 모르는 사람 눈에는 세상 편한 자리로 보이겠지만, 사십 년 가까이 새벽 바다를 호령해 온 사람에게는 그보다 불편한 밥상이 없을 겁니다. 인간극장 '아버지와 대게'를 보다가 저는 이 장면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겹쳐 보였거든요.

2014년 1월 방송된 인간극장 〈아버지와 대게〉는 경북 울진 죽변항에서 대게잡이 배 효성호를 이끄는 김용웅 선장과 가족의 겨울 이야기입니다. 도시에서 자동차 영업을 하다 내려온 아들 재선 씨, 겨울마다 일손을 보태러 배에 오르는 처남과 맏사위까지. 배 한 척에 온 가족이 함께 올라 겨울을 납니다.


매듭을 다시 매주는 손

출항 전, 빈 활주로에 400미터 밧줄을 풀어놓고 되감는 장면부터 눈길이 갔습니다. 뱀처럼 꼬인 줄과 씨름하는 아들 옆에서 아버지가 말없이 매듭을 다시 매줍니다. 아들이 배를 탄 지는 이제 4년. 정작 아버지 본인은 누구한테 배운 적도 없습니다. 가르쳐 달라고 해도 안 가르쳐 주셔서 어깨너머로 다 익혔다고 하시더군요. 열한 살에 아버지를 따라 배에 올랐던 소년이 이제 자기 아들의 매듭을 고쳐 매주고 있는 셈입니다.

재선 씨는 배울 게 끝이 없다고 말합니다. 백 가지 중에 이제 마흔 가지쯤 알았을 거라고요. 사십 대 중반에 아버지 밑에서 다시 신입이 된 남자입니다. 그 장면을 보다가 저는 좀 낯선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회사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시는지 끝내 잘 몰랐거든요. 수십 년을 다니신 직장인데도 그렇습니다.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오시는 사이의 시간이 제게는 늘 비어 있었습니다. 명함에 적힌 직함 몇 글자가 제가 아는 아버지 일의 전부였던 셈입니다.

어부의 아들은 다릅니다. 아버지가 어디서 그물을 내리는지, 파도가 높은 날 어떤 표정을 짓는지, 매듭 하나를 어떻게 매는지 전부 눈으로 보면서 배웁니다. 혼도 그 자리에서 나고 인정도 그 자리에서 받습니다. 배 위에서 야단맞고 방파제에 나가 낚싯대를 드리우는 재선 씨가 안돼 보이면서도, 아버지의 하루를 통째로 물려받는 그 자리가 저는 조금 부러웠습니다.


누워서 받는 밥상

대게철 한복판에 용융 씨는 몸져누웠습니다. 허리에 무릎까지, 의사는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병원에 다녀온 그날도 용웅 씨 입에서 나온 말은 내일 그물 당기러 나가야 한다는 소리였습니다. 고기 잡아야 돈 벌지, 하시면서요.

아들은 이때 내심 기다렸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농담 삼아서라도 "너 한번 나가 볼래?" 하고 물어봐 주시기를. 그 말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겨울 바다가 어떤 곳인지 사십 년을 겪은 사람의 걱정이 앞섰을 겁니다.

저는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회사 생활을 오래 하셨습니다. 퇴직하시던 해, 아버지에게는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고 집은 이상하게 조용해졌습니다. 평생 정해진 시간에 나가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갈 곳이 없어진 겁니다. 거실에 오래 앉아 계시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는 별말씀이 없으셨고, 저희도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습니다. 뭐라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무거운 공기가 집 안에 한동안 머물렀고, 밥상머리도 유난히 조용했습니다.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게서 일이 빠져나간 자리가 얼마나 큰지를요.

돌이켜보면 그 시절 우리 가족이 서툴렀던 건 위로의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 일한 사람에게 이제 좀 쉬시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아무도 몰랐던 겁니다. 방송 속에서 편찮은 남편에게 쉬라는 말 대신 밥상을 들이고 그물 곁에 같이 앉는 아내를 보면서, 저 집은 그걸 진작 알고 있었구나 했습니다.

그래서 허리가 아파 누워서도 바다 나갈 궁리만 하는 용웅 씨가 저는 답답하기는커녕 이해가 됐습니다. 평생 일해 온 사람에게 일이 어떤 의미인지, 저는 그 시절 아버지의 뒷모습이 아른거렸습니다. 일을 스스로 놓는 것과 일에서 밀려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용웅 씨는 아직 일을 놓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퇴직 후 한동안 흔들렸지만, 결국 다시 아침마다 나갈 곳을 찾았습니다.


여섯 번째 배

지금의 효성호. 용웅 씨는 노를 젓던 작은 배에서 효성호에 이르기까지 다섯 척의 배를 거쳤습니다. 이 배가 자신의 마지막 배일 거라고 담담하게 말합니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 배는 아들 하기 나름이라고요. 아들이 정말 뱃일을 하려고 들면 배를 더 크게 키워서 물려줘야 한다는 말도 덧붙입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도 겨울 바다로 나가는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간 온천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수영 시합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들을 배려해 늦게 출발하고도 아버지가 이깁니다. 몸져누웠던 사람이 물에만 들어가면 펄펄 나는 걸 보면서, 사람은 자기 물을 만나야 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지금은 작은 가게를 하나 하십니다. 퇴직 후 가라앉아 있던 집안 공기는 아버지가 가게를 시작하시면서부터 조금씩 풀렸습니다. 큰돈을 버는 가게는 아닙니다. 그래도 아침에 나갈 곳이 생겼고, 저녁이면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들고 들어오십니다. 식탁에서 아버지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기까지 무거웠던 몇 달을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그때 아버지에게 필요했던 건 휴식이 아니라 자리였다는걸 말이죠. 용웅 씨에게 그 자리가 효성호의 조타실이라면, 저희 아버지에게는 그 작은 가게의 계산대인 셈입니다.

방송 말미에 아내가 웃으며 말합니다. 다시 태어나도 뱃사람하고 살겠다고. 평생 새벽잠을 설치며 남편을 기다렸을 아내가 그렇게 말하니, 그저 웃으며 넘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 방송은 벌써 12년 전 이야기입니다. 재선 씨는 지금쯤 백 가지 중 몇 가지나 채웠을까요. 아버지가 말하던 여섯 번째 배도 생겼을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번 주말에 저는 아버지 가게에 들러 볼 생각입니다. 별 용건은 없습니다. 계산대 뒤에 서 계신 얼굴 한 번 보고, 저녁이나 같이 먹고 오려고요. 화면 속에서 아들의 매듭을 고쳐 매주던 그 거칠고 두꺼운 손이 자꾸 저희 아버지 손으로 보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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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KBS 인간극장 - 아버지와 대게 (2014. 1. 6. ~ 1. 10.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ylU7VyvboP4&t=50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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