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스무 살, 부모가 되다' 리뷰|영웅이 아닌 그냥 한 사람

전기 콘센트를 뽑다가 멈칫한 적이 있습니다. 사용하지 않는 플러그를 찾아 집 안을 한 바퀴 도는 제 모습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어릴 때 제가 궁상맞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 든 생각은 이상하게도 싫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나도 이렇게 되는구나. 그러면서 피식 웃었습니다.

문득 Sasha Alex Sloan의 〈Older〉가 떠올랐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영웅인 줄 알았지만, 자라고 보니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예전에는 ‘부모님도 평범한 사람이구나’라는 뜻으로만 들었는데, 그날은 그 평범한 사람을 나도 조금씩 닮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KBS 인간극장 '스무 살, 부모가 되다'를 보고 나서 그 노래와 콘센트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부모가 되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을까

인간극장 '스무 살, 부모가 되다'는 2015년 10월 26일부터 30일까지 방송됐습니다. 당시 스무 살 동갑내기였던 노완준 씨와 최리즈 씨, 돌을 앞둔 아들 지훈이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혼인신고부터 하고 아이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완준 씨는 대학을 그만두고 계약직으로 일했고, 리즈 씨는 집에서 지훈이를 돌봤습니다. 밥솥의 보온 기능도 오래 켜두지 않고, 관리비와 식비를 줄여가며 생활했습니다.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완준 씨에게 리즈 씨가 새 운동화를 사주지만, 완준 씨는 반품부터 생각합니다. 자기 신발을 살 돈이면 아내의 신발이나 지훈이의 기저귀 가방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스무 살은 실수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입니다. 실제로 완준 씨는 직장에서 발주를 잘못해 곤란한 상황을 만들고, 지훈이에게 육개장을 먹이겠다고 했다가 리즈 씨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됐다고 갑자기 모든 판단이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실수를 자기 나이로 덮을 수 없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알고 있었습니다. 완준 씨가 직장에서 잘못을 수습하고 다시 제 몫을 하려 애쓰는 모습도, 리즈 씨가 서툰 남편과 생활을 맞춰가는 모습도 그래서 가볍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건 모든 답을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내 선택의 결과를 전보다 오래 책임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스무 살의 많지 않은 나이에 그걸 먼저 배우고 있었습니다.


궁상맞다고 생각했던 걸 닮았습니다

저희 엄마도 절약을 심하게 하십니다. 어릴 때는 그 모습이 싫었습니다. 물 몇 방울, 전기 몇 와트까지 신경 쓰는 게 솔직히 궁상맞아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똑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설거지를 하거나 걸레를 빨 때면 물 한 방울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세수하는 동안에도 물을 계속 틀어놓지 않습니다. 대기전력이 아까워서 집 안을 돌아다니며 사용하지 않는 콘센트를 전부 뽑아놓습니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도 없었고, 저 모습만큼은 닮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 모습이 생각보다 먼저 제 몸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얼굴이나 목소리만이 아니었습니다. 돈을 쓰는 기준, 화가 났을 때의 말투, 걱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어느새 자식의 생활 속에 들어옵니다.

완준 씨가 지훈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은 이보다 훨씬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부모의 이혼 뒤 아버지와 살다가 열다섯 살 무렵 스스로 보육원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컸고, 자신도 화가 나면 욱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습니다. 좋은 아빠가 무엇인지는 아직 몰라도, 자신이 겪었던 아버지의 좋지 않은 모습만큼은 닮고 싶지 않아 했습니다.

저는 닮아버린 것을 그런가보다 하며 받아들였지만, 완준 씨는 닮지 않으려는 것을 매일 붙잡고 있었습니다. 같은 무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부모에게서 넘어온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부터 선택이 시작된다는 점은 닮아 있었습니다. 그대로 간직할지, 내 선에서 멈출지를 말입니다.


아버지가 그냥 한 사람으로 보인 순간

완준 씨에게 아버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었고, 아버지를 인정하거나 용서하는 일에도 마음의 벽이 있었습니다.

작은아버지의 배려로 아버지를 다시 만났을 때도 오래된 일이 한 번에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완준 씨는 그 자리에서 아버지의 다른 얼굴을 봅니다. 어린 시절 자신을 두렵게 했던 커다란 존재가 아니라, 힘든 현실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고 뒤늦게 후회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부모가 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정을 알게 되는 것과 용서하는 것도 같은 일이 아닙니다. 방송은 두 사람의 재회를 깔끔한 화해로 포장하지 않았습니다. 완준 씨 역시 서둘러 모든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만남이 더 솔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를 이해해야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도 아니고, 과거를 모두 용서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닐 테니까요. 완준 씨에게 더 중요한 일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정답을 내리는 것보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지훈이에게 같은 모습으로 건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형편이 넉넉해진 뒤로 결혼식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큰돈을 들이기보다 자신들의 힘으로 준비했고, 완준 씨는 오래 신은 운동화 대신 새 구두를 신었습니다. 가족사진도 남겼습니다. 두 사람이 어린 시절 충분히 가져보지 못했던 것을 지훈이에게는 먼저 만들어주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 부모님이 영웅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게 꼭 실망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래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습니다. 엄마도 수도세와 전기세를 걱정해야 했고, 하기 싫은 집안일을 매일 했고, 자신보다 가족에게 돈을 먼저 써야 했던 한 사람이었다는 것.

완준 씨도 아버지를 영웅으로 다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두려움과 원망으로만 보이던 아버지에게도 한 사람의 얼굴이 있다는 것을 잠시 보았습니다.

콘센트를 뽑는 손끝에서 엄마를 발견했을 때 피식 웃었던 건, 어쩌면 그때 처음으로 엄마를 한 사람으로 본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완준 씨가 술자리에서 아버지의 흰 머리를 보았을 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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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인간극장 - 스무살, 부모가 되다 (2015.10.26.~10.30.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ldzm6Eei1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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