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집 대신 캠핑카를 샀다 — 32,000평의 마음을 가진 부부
저는 집을 꽤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주말이면 괜히 가구 배치를 바꿔보고, 작은 소품 하나 놓는 위치를 두고 한참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극장 '우리는 집 대신 캠핑카를 샀다'를 처음 봤을 때, 이 부부가 솔직히 잘 이해가 안 됐습니다. 멀쩡한 전셋집을 빼고, 캠핑카를 사서, 아무 데나 떠돌겠다고요? 근데 40분을 보고 나서 조용히 제 집을 한 번 둘러봤습니다. 넓고 정돈도 잘 되어 있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 같았습니다. 부부가 강아지 뽀송이까지 데리고 캠핑카 안에서 오손도손 사는 모습을 보면서는 '저 세 평짜리 공간이 진짜 집이구나' 싶었습니다. 집이라는 게 평수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캠핑카 생활, 짐을 줄이니 삶이 가벼워졌습니다
저도 이사할 때마다 짐이 얼마나 느는지 실감합니다. 쓰지도 않는 물건들이 박스 안에 가득한데 버리지 못하고, 결국 새 집에서도 구석에 처박아둡니다. 현진 씨와 연주 씨는 그걸 전부 버렸습니다. 신혼 때부터 쌓인 짐을 죄다 정리하면서 오히려 홀가분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쉽게 안 믿겼습니다. 근데 화면 속 두 사람 표정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억지로 홀가분한 척하는 얼굴이 아니었거든요.
세 평짜리 캠핑카에서 살다 보면 쓸데없는 걸 살 수가 없습니다. 놓을 데가 없으니까요. 공간이 줄어드니 욕심도 줄고, 욕심이 줄어드니 걱정도 줄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물건을 유지하는 데 쓰고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청소하고, 정리하고, 또 사고. 연주 씨가 "광파오븐이니 이런 거 중요한 게 아니에요, 실력이 중요해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괜히 뜨끔했습니다. 저를 보면서 하는 말인 줄 알았습니다.
거제도 쌍근마을, 정착하지 않았는데 뿌리가 생겼습니다
저는 한 동네에 몇 년씩 살아도 윗집 아랫집 얼굴을 잘 모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는 게 전부고요. 근데 이 부부는 거제도 구석 마을에 캠핑카 하나 들이밀고 살면서 2년 만에 온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갔습니다. 어촌계장님 어머니는 월급봉투를 손에 쥐어주시고, 구판장 이모는 딸기를 쥐어 보내고, 배 있는 친구는 짬을 내서 마중을 나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캠핑장 화장실을 청소하고, 멍게 양식장에 새벽부터 나가고, 어르신들 김장을 거들었습니다. 대단한 게 아닌데 쌓이니까 정이 됐습니다. 보트 몰고 남편 도시락 배달하는 연주 씨를 보면서 저는 잠깐 웃음이 났다가, 금방 뭔가 찡했습니다. 저런 관계가 내 삶에 있나, 하고요. 주소지를 옮기지 않아도 마음이 머무는 곳이 고향이 된다는 걸, 이 부부가 보여줬습니다. 어디서든 전망 좋은 집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부러웠지만, 어디를 가도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더 부러웠습니다.

캠핑카 한 대가 부부를 다시 마주 보게 했습니다
현진 씨가 말했습니다. '가장 큰 수확은 아내를 되찾은 것' 이라고. 맞벌이하던 시절, 집에 와도 각자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봤다고 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가 하숙생 같았다고요. 저는 이 대목에서 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런 밤이 있어서, 그 말이 남의 얘기 같지 않았습니다. 넓고 좋은 집에 살수록 서로가 더 멀어질 수도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주 씨가 우울증을 앓던 시절 얘기는 조심스럽게 나왔습니다. 어디에도 자리 잡지 못하는 느낌, 아무도 만나기 싫던 시절. 캠핑카가 특별한 치료를 해준 게 아닙니다. 그냥 함께 있게 해줬습니다. 같이 운전하고, 같이 요리하고, 같이 해루질하고, 같이 무서워했습니다. 뽀송이도 그 옆에 있었습니다. 그게 전부인데 그게 충분했습니다.
새벽 전망대에서 일출을 바라보며 연주 씨가 '내 얼굴 같다'고 했을 때 현진 씨가 "연주 떴네"라고 받아 주었습니다. 저는 두 사람의 그 짧은 대화가 마음 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저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이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새벽을 같이 보내야 하는 걸까요. 그리고 32평 아파트 없어도 괜찮냐는 현진 씨의 질문에 연주 씨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마음이 32,000평인데 뭐." 저는 이 한마디를 듣고 ‘와! 이 사람 진짜다.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지금 내 마음은 몇 평일까?’ 하는 생각들이 끝도 없이 밀려왔습니다. 방송을 본 지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제 마음 속에는 그 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질문의 답을 천천히 찾아가 보려 합니다.
참고: KBS 인간극장 - 우리는 집 대신 캠핑카를 샀다 (4490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