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씨와 옥분 씨는 제주 영락리를 떠난 뒤에도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갔습니다. 양친이 안 계신 두 사람에게 어르신들은 부모님 같은 존재였습니다.
KBS 인간극장 ‘오스틴과 옥분’을 보면서 그 관계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족이라서 함께 사는 경우도 있지만, 함께 살아가는 동안 가족이 되는 관계도 있으니까요.
잘 사는 모습으로 답한 시간
2019년 3월 4일부터 8일까지 방송된 인간극장 ‘오스틴과 옥분’에는 나이지리아 출신 오스틴 우다바 씨와 아내 한옥분 씨, 딸 새라가 출연했습니다.
오스틴 씨와 옥분 씨는 봉사단체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4년간 연애한 끝에 결혼했지만 국적과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주변의 반대와 차가운 시선을 겪었습니다. 오스틴 씨는 옥분 씨에게 우리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옥분 씨가 흔들릴 때마다 오스틴 씨는 자신을 믿어달라고 붙잡았습니다.
방송 당시 두 사람은 결혼 17년 차였습니다. 오스틴 씨는 새벽부터 제주 건설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어와 현장 용어가 서툴렀지만, 3년 넘게 일하면서 여러 현장에서 찾는 중급 목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옥분 씨도 제주에서 미용실을 열었습니다. 경력 단절을 겪은 뒤 미용 자격증을 따고 자신의 일을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딸 새라는 아빠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며 부부의 일상 한가운데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잘 산다는 것은 대단한 성공으로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아침이면 각자의 일터로 가고, 저녁이면 세 식구가 다시 한집에 모였습니다. 그런 하루가 17년 동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같은 사람들이 생긴 마을
두 사람은 제주 영락리에서 4년을 살았습니다. 방송이 촬영되기 1년 전 읍내로 이사했지만, 첫 보금자리였던 마을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부부에게 영락리 어르신들은 부모님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르신들은 오스틴 씨를 피부색이나 국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한 마을에 사는 이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먹을 것을 챙겨주고 안부를 물으며 부부와 새라의 곁을 채워주었습니다.
저는 이 관계가 특별한 한순간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주 얼굴을 보고,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생활을 챙기는 동안 조금씩 가까워졌을 것입니다. 이사를 한 뒤에도 다시 찾아가게 되는 사람은 주소가 달라졌다고 남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1년 동안 그 집의 가족이었습니다
영락리 어르신들과 오스틴 가족을 보면서 20년 전 미국에서 지냈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1년 동안 주디와 마크 부부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습니다. 그 집에는 아들 조던과 골든리트리버 두 마리, 코디와 록시도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1년 동안 주디와 마크의 가족이었습니다. 거의 완벽하게요.
장을 보러 갈 때도 함께 갔고, 요리와 설거지, 집 안 청소와 빨래도 같이했습니다. 주말이면 뒷마당에서 코디와 록시에게 테니스공을 던져주며 놀았습니다. 저는 손님처럼 방 하나만 빌려 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집에서 해야 하는 일과 하루의 시간을 가족들과 나누며 살았습니다.
1년 뒤 한국으로 돌아올 때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머물던 숙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던 가족과 헤어지는 기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페이스북으로 종종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시차도 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연락은 자연스럽게 뜸해졌습니다. 그래도 가끔 페이스북에 들어가 예전에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읽어보곤 했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우연히 조던의 인스타그램을 알게 됐습니다. 들어가 보니 조던의 결혼사진이 있었고, 그 안에서 주디와 마크의 최근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제가 기억하던 따뜻한 인상은 그대로였습니다.
따로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두 사람이 여전히 함께 있고 잘 지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그 사진을 보고 나니 오스틴 씨와 옥분 씨가 이사한 뒤에도 영락리를 다시 찾은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났다고 해서 가족이었던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주디와 마크의 집에서 보낸 1년은 연락이 뜸해진 20년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는 것 처럼요.
인간극장 오스틴 씨 근황
오스틴 씨는 2025년 3월 3일 KBS 공사 창립 52주년 특집 아침마당에 출연했습니다. 인간극장 당시 건설 현장의 중급 목수였던 그는 현재 무역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화제가 됐던 “아이고, 사장님”을 다시 들려주며, 자신의 영상이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사실은 나중에 조카를 통해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극장 출연 이후 삶이 더 행복해졌다고 했습니다. 과거 영상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훌쩍 자란 딸과 아내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며 웃었습니다. 하는 일은 달라졌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그의 일상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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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KBS 인간극장 - 오스틴과 옥분 (2019. 03. 04. ~ 03. 08.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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