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극장 ’미선 씨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리뷰|스물일곱이 고향 바다로 돌아간 이유

새벽 다섯 시, 코끝이 시린 서해 바닷바람 속에서 배 한 척이 출발합니다. 배에 탄 사람은 앳된 얼굴의 스물일곱 살 장미선 씨입니다. 물메기 그물을 거두고, 횟집 설거지를 하고, 밤늦게는 꽃게 택배를 포장하는 하루. 보는 것만으로 허리가 뻐근해지는데 미선 씨 얼굴에는 내내 웃음이 걸려 있습니다. 

저 웃음이 진짜일까…? 저는 미선씨를 유심히 쳐다봤습니다. 스물일곱의 저는 엄마 심부름으로 마트 한 번 가는 것도 귀찮아하던 사람이었거든요. 미선 씨는 엄마 대신 배까지 타고 있었습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해서 닷새치 방송을 끝까지 봤습니다.

2010년 겨울 방송된 인간극장 〈미선 씨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서울 직장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온 스물일곱 장미선 씨의 이야기입니다. 무대는 충남 홍성의 작은 포구 남당항, 부모님이 횟집을 하는 마을입니다.


엄마보다 먼저 시작하는 새벽

미선 씨는 서울에서 3년 반 동안 직장에 다녔습니다. 겉으로는 씩씩했지만 몸도 마음도 자꾸 아팠다고 합니다. 나한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다고, 마음 놓고 쉴 집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도 한때 타지에서 살았습니다. 낮에는 그럭저럭 지낼 만했습니다. 문제는 저녁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불 켜진 남의 집 창문들을 지나칠 때의 허전함은 겪어 본 사람만 압니다. 

방문을 열면 아무도 없는 집. 미선 씨가 말한 "쉴 집이 없다"는 게 방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저는 바로 알았습니다. 집이라는 말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도요. 몸을 누이는 집과 마음을 부리는 집. 그 시절 제 방은 앞의 것만 해 줬습니다.

미선 씨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변에서는 말렸다고 합니다. 젊은 아가씨가 왜 시골로 내려가냐고요. 그런데 방송 속 미선 씨는 지금이 제일 좋다고 말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밭일을 거들고, 배를 타고 나가 그물을 당기고, 엄마보다 먼저 가게에 나가 상차림을 끝내 놓습니다. 좋아서 하는 몸놀림과 마지못해 하는 몸놀림은 화면 너머로도 구분이 됩니다. 

미선 씨는 몸을 누이는 곳과 마음이 쉬는 곳을 다시 하나로 만드는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그 시절 낯선 도시에서 버티는 쪽을 택했고요. 어느 선택이 맞았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방송 속 미선 씨의 표정은 그 시절 제 얼굴에서는 본 적 없는 표정이었습니다.


잔소리 뒤에서 하는 일

미선 씨 엄마는 잔소리가 많습니다. 수조 청소를 제대로 못 한다고, 택배 개수를 안 세고 왔다고, 밥도 안 해 놓고 주방만 어질러 놨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딸을 잡습니다. 보는 내내 미선 씨가 안쓰럽기도 했습니다. 

저도 젊을 때는 엄마의 한마디가 그렇게 듣기 싫었습니다. 잔소리 자체가 싫었던 건지, 잔소리를 듣는 제가 초라해지는 게 싫었던 건지 지금도 헷갈립니다. 

마흔을 넘기고서야 시키기 전에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됐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참 오래 기다리셨겠습니다.

미선 씨는 달랐습니다. 엄마한테 답답한 마음이 들면 국화밭에 나가 잠깐 바람을 쐬고, 금방 다시 앞치마를 매고 들어옵니다. 부모 자식 간이라 별일도 아니잖아요, 하면서요. 그 스물일곱이 저는 새삼 어른으로 보였습니다. 

답답할 때 나가 서 있을 국화밭이 있다는 것도 부러웠습니다. 그 시절 저는 속상하면 이불 속에만 들어가 있었는데, 밖에 나가서 하늘이라도 볼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미선 씨 엄마는 잔소리 뒤에서 몰래 다른 일을 하십니다. 언니한테 전화를 걸어, 미선 씨가 결혼식에 신고 갈 신발을 사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잔소리 많은 엄마들이 뒤에서 하는 일이 늘 이렇습니다. 말로 못 하는 걸 손으로 합니다. 

나이가 들어 그 시절 엄마의 잔소리를 번역해 보니 대부분 같은 말이었습니다. 밥은 먹었니, 몸 상하지 마라. 엄마는 그 말을 수조 청소와 택배 개수로 돌려서 할 뿐입니다. 

미선 씨는 스물일곱에 이미 그 번역을 끝낸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불 꺼진 주방

이 편에서 제일 마음에 걸린 장면입니다. 미선 씨가 혼자 가게를 보던 날 손님이 회를 주문합니다. 횟집 딸인데 회를 뜰 줄 모릅니다. 이 집 저 집 뛰어다니며 부탁하고, 겨우 이웃 언니 손을 빌려 상을 차립니다. 

그날 밤 엄마가 일찍 들어가자 미선 씨는 가게에 혼자 남아 불을 전부 끄고 칼을 갈기 시작합니다. 엄마도 횟집을 처음 시작했을 때 창피해서 불 끄고 혼자 연습했다는데, 자기도 똑같이 하고 있다며 웃습니다. 닮지 않으려 해도 결국 손이 먼저 엄마를 따라가는 모양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엄마 흉내는 내지 않겠다고 살았는데 어느 날 보니 엄마 손놀림으로 파를 썰고 있더군요. 도마 두드리는 소리까지 비슷했습니다. 

처음에는 흠칫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 손놀림은 제가 수십 년 밥상 옆에서 공짜로 받은 수업이었습니다. 요리책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고 어깨너머로만 전해지는 수업이요. 

미선 씨가 어두운 주방에서 갈던 칼도 결국 엄마한테 물려받는 중인 기술이죠. 배우는 자리가 학원 강의실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마음이 가지 않았을 겁니다. 

불까지 꺼 가며 혼자 연습하는 마음, 잘하고 싶은데 들키기는 싫은 그 마음이 낯익어서 한참을 봤습니다. 저도 뭐든 처음 배우던 시절에는 낮에는 아는 척으로 버티고, 밤에 혼자 찾아보면서 구멍을 메꾸던 사람이라서요.

방송 말미에 미선 씨가 말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믿음이 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요. 꿈치고는 참 수수합니다. 그런데 방송 닷새 내내 미선 씨가 한 일들을 돌아보면, 엄마보다 먼저 하루를 열고 잔소리 뒤에 다시 앞치마를 매던 그 하루하루가 몸에 쌓인 이미 믿음이 가는 사람이 되있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가 한 천번 쯤 쌓여 생긴 믿음 말이죠. 


2026년 현재 근황

방송이 끝난 지 어느덧 16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미선 씨도 이제 마흔을 넘겼겠습니다. 근황이 궁금해서 찾아보니 '소문난수산 벌써소문난 집' 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남당항에서 꽤 알아주는 맛집이 되어 있었어요. 미선씨는 지금도 어머니의 식당 운영을 도우며 살아가고 계실 것 같아요. 여전히 누군가에게 믿음이 되는 사람으로 말이지요. 어쩌면 그것이 '미선 씨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제목에 가장 잘 어울리는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언젠가 남당항에 갈 일이 생기면 저는 아마 그 횟집 간판부터 찾아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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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KBS 인간극장 - 미선 씨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010. 11. 29. ~ 12. 3. 방송)

https://www.youtube.com/watch?v=7QXbeiLV5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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